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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산동교당 백우암 성적지의 교단사적 의의

 

1. 정산종사 요양지
  산동교당 백우암은 정산종사께서 요양하시며 일언첩 潦霽任天과 법문) 수 편을 남겼다.

 

2. 대종경 편수 도량
  원기 415, 발족한 대종경 편수 위원회는 발족후 1년 반 동안 자료수집을 마치고 원기 42101일 편수 장소를 산동교당 백우암으로 옮겼다. 원기 42613, 정산종사께서 장수교당(현 장수정화사)으로 정양을 오시자 10월부터 이듬해 51일까지 범산 이공전, 이산 박정훈, 최복기화, 김현진 등은 정산종사의 감수를 받아 대종경 각 품을 나누고 편수를 마친 곳이다.
  원기 4355일 장수정화사가 설립되자 대종경 편수 위원회를 해체하고 정화사로 이전하였다.

 

3. 정산종사 시탕 화보집
  “山東潦霽라는 범산 이공전 교무의 정산종사 시탕기념화보집의 소중한 사진자료첩을 남겼다.

 

4. 산동교당 설립
  남원교당 이자동화 교도가 선방으로 사용하던 백우암 건평 20, 임야 10,500평을 희사하여 원기 381월에 설립하였다.

 

5. 교보 제13
  원기 9159일 지정되었다.

 

<원불교 산동교당 백우암 과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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