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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구 마령교당 한인숙 교도


마령교당-한인숙 교도님.png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마령교당은 〈대종경〉 실시품에 등장하는 유서 깊은 교당이다. 이곳에 집안 대대로 원불교에 귀의해 신앙하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성타원 한인숙(78·盛陀圓 韓仁淑)교도이다. "남편(故석산 고석성) 증조할머니 때부터 손자 손녀까지 저희 집안은 6대가 원불교 집안이에요." 얼마 전 부군의 종재식을 마쳤다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령교당은 교단 초창기인 원기9년(1924)에 최도화 선진의 인연으로 알뜰한 동지들을 만나 총부에 정식으로 교무 파견을 요청해 교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뒤 원기14년(1929)에 중앙총부로부터 선교소 인가를 얻어 원기19년(1934) 교당으로 등록됐다. 원기9년 김갑신 교도가 최도화 선진의 연원으로 입교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고석성 교도의 증조할머니이다. 김갑신 교도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녀가 없어 고석성 교도의 할아버지를 양자로 삼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일원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양가 어머니의 권유로 남편하고 21살 때 처음 중매를 했는데 그 집안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부모님, 시아주버니까지 모셔야 해서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 계신 교감선생님이 3년 후 마령으로 발령받아 면장이신 시아버지와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세분이 만나서 24살 때 남편과 결혼하게 됐지요." 곱게 자란 한인숙 교도는 이렇게 고석성 교도와 인연이 됐다.

원불교와의 인연에 대해서 한 교도는 "결혼 후 남편은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저는 시댁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지냈어요. 남편 따라 부산에 가려고 했는데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부산으로 가면 죽겠다고 소동을 일으켜 못가게 됐어요. 결국 남편이 마령으로 돌아와 함께 살았죠. 그때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교당을 참 열심히 다니는 걸 보고 원불교를 알게 됐어요"라고 회고했다.

"두 할머니가 저를 너무 이뻐했지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시기 질투했어요. 오히려 할머니들이 어머니를 나무라셨지요.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 정성스럽게 손수건에 싸 놓았던 교전을 주셨어요."

이렇게 교당에 나가게 된 한 교도. "박명음 교무님이 너무 좋은 말씀만 하셨어요. 어디 가서 돈 주고 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해주셔서 계속 열심히 다녔지요." 이후 그는 전주로 이사를 해 인후교당에 다니다가 삼례로 거처를 옮겨 삼례교당에서 20여 년 동안 주인 역할을 하게 됐다.

"대종사님은 사람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떠나서 모두 다 부처님이라 불공하듯이 공경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삼례교당 신축할 때 인부들 밥도 해드리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삼례교당 교도들에게 부처님 소리를 듣는다는 한인숙 부부는 종법사 표창을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보시를 많이 하셨어요. 그 모습을 제가 그대로 보고 자랐고요. 두 할머니의 신앙심으로 제가 복을 받는 거 같아요. 저도 복을 짓고 베푸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솔선수범으로 부군은 교도회장을 역임하고 한 교도는 봉공회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교당 일도 열심이지만 대사회 봉사활동도 최선을 다한다. 한 교도는 완주군 여성자원봉사회 활동과 자원봉사로 전라북도도지사 표창과 완주군수 표창까지 받은 이력이 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 다 부처님이라 불공하듯이 공경해야
복 짓고 베푸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

계속해서 봉사활동 하고파"


그의 실천력으로 2남2녀 자녀는 물론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교당에 다니고 있다. 그의 큰 며느리 교화는 유명하다. 기독교 신앙을 하던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깊은 신앙심에 반해 원불교인이 됐다.

"제가 바빠서 원창훈련을 대신 보냈어요. 그런데 훈련 때 감화를 받았는지 그 이후 교당에 열심히 다니더라고요. 지금은 교당 일을 넘어 전북교구 여성회 부회장도 역임하고 교구 합창단까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원불교인이 아니면 결혼은 안된다'는 원칙은 모든 자녀에게 항상 지켜졌다.

8년 전 부군의 병환으로 고향인 마령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고석성 교도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정성스럽게 모셨다. 고씨 집안 모두가 그에게 의지하고 위안을 받는다.

"서경은 교무님이 정말 정성스럽게 재를 모셨어요. 가족 모두가 재를 모시면서 기운이 모이고 신심이 더 살아나는 걸 느꼈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담백한 목소리에 깊은 신앙심이 느껴진다.

종재식을 마치고 그는 가족여행으로 아픔과 슬픔을 달래고 돌아왔다. 이제는 고향에서 봉사활동을 더하고 싶다는 그는 인과의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불공의 대가이다.

[2019년 8월16일자]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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